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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희구

by lobbylobby 2023. 4. 26.

안녕하세요, lobbylobby입니다.

오늘은 단편소설 희구에 대해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단편소설 희구 

단편소설 희구

 

제목을 희구로 정했습니다. 중의적인 거시기도 거식하지만 결정적으로귀찮아서 a앞에 것도 좀 바뀌었으니 다시 읽어주셔도 되요 희구희구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며칠 전의 잠자리며 새로 입사한 여자 후배의 심상치 않은 눈초리 당첨된 만원 어치의 복권과 복권에 따라붙은 꿈 이야기 오늘 희구의 천금같은 시간은 나에게 휴가오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도대체 나는 광화문에서 종각까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걸었다. 3가로 나가자니까 저번에 회사 사람들이랑 같이 와서 아 너 메로라는 물고기 먹어봤냐 안 먹어봤다구 그게 얼마나 맛있는 생선인줄 알고 안 먹어본 거야 그게 살이 꼭 조개 다리 같은데 아니 조개 다리는 아니구 다 먹고 나면 조개 껍질에 붙어 있는 살 있잖아 어 뭐라구 그래 그거 관자 그거처럼 결이 세로로 나 있거든 근데 엄청 연하다. 니까 어 이게 못 믿는 눈치네겨울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머지 않았고 내 주변에는 신이 난 희구밖에 없었다. 이불처럼 눈은 내리고 있었다. 춥지 않았다. 그게 원양어선에서 잡은 고기인 건 아는 거야 먼 바다에서 잡은 거니까 얼린 게 분명한데 얼린 티가 전혀 안 나는 거야 그렇다니까 참치랑 비교하는 건 말도 안 되지가락이 붙어 2절로 넘어가려던 하던 희구의 이야기가 끊어졌다. 목을 긁는 척 하던 희구가 목을 긁다만 손가락으로 한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칠십 팔 점희구는 동태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동태눈이라고 할 수 없었다. 손가락질을 하던 손가락은 귀를 후비적거리고 있었다. 하희구가 귀를 후비적거린다는 것 희구와 카드를 한 판만 쳐 본 사람은 희구의 패를 알 수 있다. 하희구는 귀를 후비적거린다 좋은 패가 들어왔을 때 나쁜 패가 들어왔을 때 죽기 아까운 패가 들어왔을 때 배는 고프고 신경질이 날 때 화장실은 급한데 자리를 비울 수 없을 때 한 판 안에 한꺼번에 모든 모습이 보여진다 또한 나이트에서 돈 내지 않고 도망칠 때 술을 많이 마셨을 때 선생님께 졸다 걸렸던 때 무단 횡단할 때 책을 읽다가 졸음이 올 때 희구는 언제나 귀를 갖은 방법으로 종류별로 다양하게 후비적거렸고 지금도 귀를 못살게 굴었다. 이번 희구의 말은 단순한 거짓말이었다. 어느새 칠십 팔 점 짜리 여자의 옆에서 물건을 고르는 희구가 보였다. 넓게 편 노점에는 조각 그림 맞추기가 있었다. 천 피스 영화의 장면들과 고호의 그림 노란 머리의 어린 왕자가 조각나 있었다. 하나 사줄까저 여자 주게저 여자인 여자가 고개를 돌려 희구를 바라보았다. 움찔한 희구는 손이 가는 대로 어린 왕자 그림을 집었다. 희구가 저걸 다 맞추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거스름돈을 받은 희구는 동전을 쨍그랑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듣지 않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동전 소리는 두 배로 들렸다종로에서 인사동으로 진입하려면 조심해야 한다. 벌써 희구는 조심성 없게 발을 밟히고 있었다. 별 말이 없이 희구는 발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별 일이 다 있군 할 일이 아니다. 희구는 새 구두를 사려고 했으니까 눈 오는 밤에 새 구두를 사려 돌아다니다. 굴삭기에 발가락을 밟혔다 해도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희구는 새 구두를 사려고 했으니까인사동 어귀에는 삼 층 짜리 금강제화가 행인들을 무심히 흘려 보내고 있었다. 맞은 편에는 인파에 떠내려오다 바위에 걸린 나뭇잎처럼 구걸하는 노인 하나가 앉아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의 파도에 떠밀려 들어갔다이 가격 대에 나온 제품으로 이게 제일 예쁘게 나온 제품이구요. 세일 기간이니까 내일까지 20프로 할인해 드리는데 내일 또 오시면 불편하시죠. 이걸로 하시겠어요. 이백 칠십 오는 지금 다 나갔는데요. 팔십 한 번 꺼내드릴까요. 나는 천천히 여자 구두를 구경했다. 매장은 무척 밝았다. 눈송이 같은 불빛은 구두코에 앉아 반짝거렸다 반짝거리는 구두 반짝거리는 구두와 희구 희구는 해병대 출신이었다. 해병대 출신은 무엇인가 해병은 울지 않는다 해병은 돌아오지도 않는다 해병은 진정한 남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해병은 반짝거리는 군화를 신지 않는다 바슬바슬한 세무 군화를 신는다 그러나 희구가 바슬바슬한 군화를 신었다. 고 해병이 된 것은 아니었다. 긍정적인 희구는 매일 울며 돌아오고 싶어했다. 따라서 진정한 남자가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휴가를 나와서 희구는 술잔을 들기 전부터 울었다. 철모에 한 방울 총알에 한 방울 희구는 토하면서도 울었고 군화끈을 매면서도 울었다. 누구를 위해 우는가 누가 울렸는가 모르겠다. 울다 지친 희구는 반짝거리지 않는 군화를 눈물로 광을 냈고 다음 휴가 때 절반쯤 울었다. 그 다음엔 반의 반 그 다음은 반의 반의 반 지난 휴가 때 어디까지 울었을까 계산하기도 지쳤는지 희구는 우는 시늉을 하다. 제대했다. 점원들은 반품하는 손님을 달래고 들어오는 손님에게 목소리로만 인사하느라고 바빴다 치수를 물어보고 카드 영수증에 사인을 받고 새 구두를 꺼내오고 구두를 신겨주고 꺼내온 구두를 가져다 놓고 구두 주걱을 뒷주머니에서 사뿐하게 꺼내며 웃음을 지어 보이느라 바빴다 손님들도 놀고 있지 않았다. 점원에게 뗑깡을 놓으며 반품하거나 반짝거리는 구두에 지문을 찍느라 바빴고 눈길을 헤치던 언 발을 새 구두에 밀어 넣었다. 가 빼기를 바쁘게 했고 말 거는 직원 무시하기 점원이 신겨줄 때 부담스러운 표정 짓기로 바빴고 유리벽 밖으로 눈 내리는 모습을 바쁘게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매장 안의 희구는 두개골의 조각조각 갈라진 금 같았다. 모든 것이 바쁜 시절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르게 한가한 희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뭐 골랐냐힘껏 걷어차서 발목 하나 부러뜨려도 말짱할 만큼 희구가 고른 구두는 거무튀튀했다. 얼마야십 삼만 원더럽게 비싸네매장에서 나와서 희구의 새 신발을 가볍게 밟아 주었다. 하희구는 욕을 하며 뒤뚱뒤뚱 날뛰었다. 새 구두는 미끄러지기 좋았다. 결국 자빠졌다. 저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희구의 엉덩이엔 눈이 수북히 쌓이고 눈사람 안의 연탄처럼 작은 핵이 되어 인사동을 굴러다니다. 가 늙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는 도중 희구가 소리를 치는 바람에 정신이 들었다. 가만 보고 있지 말고 저거 좀 주워사람들은 지나가고 희구와 동전을 줍는 나는 점차 손이 얼어갔다오락실 주인해라눈 속에 빼꼼 숨은 동전들은 내가 주워담은 것만 해도 천 원이 넘었다. 술집은 따뜻했다. 온기로 희구의 볼은 빨개졌다. 자리에 앉자 희구는 말했다. 빙판길은 정말 위험하단 말이야 눈은 또 왜 이렇게 오는 거야 이런 날은 정말 조심해야 된단 말이야 어제도 차를 몰고 가는데 길에서 쭉 미끄러졌거든 별 거 아니었지만 사람이란 게 늘 조심하고는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야 너도 운전 할 때 이렇게 눈 오는 날은 체인 감아도 위험하니까 내 차 빌릴 생각은 아예 말고 나처럼 운동 감각이 좋은 사람도 위험하거든 아까 나 넘어질 때도 그랬거던 신발이 새 거여서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이런 겨울에 한 번도 안 넘어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단 말이야 요는 얼마나 집에서 나오지 않느냐지 지하철이 마음 편한 거야 오늘만 해도 보라구 회사에 차를 두고 오니까 술자리도 편하고 주차 신경도 안 쓰고 말이야 좋은 게 한도 끝도 없다니까 근데 이 놈의 술은 언제 나오지 여기요 술이 나오자 계속 희구는 말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너도나도 차를 몬다는 것도 문제야 길 막히는 것도 그렇지만 그게 다 딸라 낭비 아니냐구 월급에서 기름 값이 반이나 드는 사람들이 낑낑대며 차 모는 건 사치야 차 가진 사람들은 주말에만 운전해야 해야 길도 덜 막히고 좋지 않겠냐구 응 일 열심히 하려고 차 쓰는 사람들 빼고 출퇴근한답시고 혼자 몰고 다니는 개새끼들이 없어져야 우리나라가 발전할텐데 말이야 건배부터 하고 마셔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래 좁은 땅덩어리 하 우리나라는 너무 좁아서 문제야 이거 안주는 언제 나오지안주가 나오자 말했다. 어제 신문을 보다가 말이야 그럼 신문은 꼬박꼬박 보지 제대로 된 기사가 있었는데 아 집으로 배달해서 보는 건 아니구 회사에서 본 건데 한국 사람들이 점점 더 놀러 다니는 데만 정신이 빠졌다. 는 거야 제대로 짚었지 그럼 제대로지 나만 해도 연말이다. 뭐다 해가며 마음이 풀리는 걸 느끼는데 사람들은 더하면 더했지 절대 정신 차릴 놈들이 아니거든 그런 데다가 주 5일 근무니 뭐니 떠들다가 크게 당해봐야 정신 차릴 거야당최 닥치고 처먹는 때가 없는 희구는 나무 젓가락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말했다. 희구는 사랑은 아무나 하는 거냐고 했다. 내 마음을 이해하느냐고도 말했다. 희구는 평소보다 높게 어깨를 으쓱했다. 희구는 끼득끼득 웃다가 꽁초까지 태우고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알맞지 않게 가는 손목과 긴 손가락이 보였다. 희구는 혓바닥을 날름댔다 입술을 닦는 정갈한 엄지가 보였다. 희구는 인생에 대해서 잠깐 말하려다가 말았고 대신 주식에 대해서 말했다. 주식에 대한 얘기는 길지 않았고 다시 날씨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하지마응안절부절 못 하던 매력적인 손은 동전으로 테이블을 갉고 있었다. 아 응대신 희구는 동전을 돌리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 접시를 잘도 피해가며 동전은 회전했다. 희구의 손목을 분질러 놓고 열을 세면 동전이 멈출 것 같았다. 동전이 멈췄다희구야뭐지금 있는 집에서 집 값 올려달라는데 오백만 꿔주련오백오백오백…… 으음……미간을 잔뜩 좁히고 귀를 후비적거리고 앉아있는 희구의 이마에 키스라도 해주고 싶었다. 천천히 갚는다이자는주식해서 날리는 것보다 이자 없는 게 낫지개새끼고마워 건배희구는 접대에서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라고 했다. 취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잠에 들 때면 자기를 아끼지 않는 주인에 대한 위의 복수를 개시한다. 고 말했다. 편두통도 지독하다. 고 말했다. 그러나 친구와 마시는 술은 뒤끝이 개운하다. 고 했다. 나는 시끄럽다고 말했다. 어쨌든 희구는 계속 마셔댔다밤이었다. 눈 내리던 시간이 끊어지고 차도 이미 끊어졌다. 택시를 타고 적막한 집으로 향하느냐 밤을 새며 술을 마시고 아침해를 보느냐를 결정해야 할 시간 우리는 허물어진 눈사람처럼 종로를 지키고 있었다. 희구야뭐그거 나 줘라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은 나날 조각 그림을 맞추면 인생이 기워질까 싶었다. 그림 맞추기 퍼즐은 간단하다. 바로 옆의 조각을 찾아내고 그 옆의 그림을 이어나가는 방법 마지막 한 조각을 끼워 넣으면 기척 없이 다음 해가 올 것 같았다. 가져어린 왕자가 작은 화산을 청소하는 그림이었다. 희구는 손톱을 이쑤시개로 청소하고 있었다. 그거 다 맞춰서 벽에 걸어놔도 별로겠구만 영화 그림을 살 걸 그랬나희구가 떠들었다. 야 바람 좀 쐬다가 2차 가자 여기 얼마예요. 인도는 어느새 말끔히 비질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아까보다는 많지 않았다. 희구는 보도 블록의 금을 밟지 않고 걸었다. 네모 반듯한 규칙과 술기운과 희구의 발소리는 한 걸음에 내 속을 두 배씩 울렁거렸다 하희구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목덜미에 입김과 눈뭉치를 소리없이 밀어놓고 도망갔다 쫓고 쫓기던 아름다운 연인들처럼 우리가 자빠진 곳은 조흥은행 본점 앞이었다. 광통교廣通橋 조흥은행 앞 사거리에 있던 광통교는 원래 토교土橋였는데 큰 비로 유실되자 태종 10년1410에 돌다리로 개축되었다. 돌 판에 적힌 글자를 희구가 웅얼거리며 읽어 내려갔다여기에 있는 광통교는 서울 정도 600년을 맞이하여 그 원형의 사 분의 일로 축소 복원한 것이다. 사 분의 일로 축소되어 드러누워 자다가 얼어죽기 딱 알맞은 정도의 크기의 돌다리 밑으로 작은 연못이 있었다. 다리에 의해 반분된 그 연못은 가장자리만 얼었을 뿐 얕은 바닥이 비쳐 보였다. 바닥에는 돌 주발이 있었고 십 원 백 원 오십 원 짜리 동전 자동차 열쇠 안경 하나도 반짝거렸다희구야 저 물이 안 언 이유가 뭘까뜨거운 물을 부었을 거야그랬군우리가 바보 같은 대화를 나누며 물 속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반대편에는 어려 보이는 아가씨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이 눈을 감고 동전에 입을 대었다. 물 속으로 던지는 것이 보였다. 잽싸게 다가가 그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희구가 있었다. 희구가 물었다. 무슨 소원 빌었어요. 눈밭에 구르다 옷을 털지 않은 희구를 산타로 본 것이 아닐까 동전에 입을 맞추고 던진 여자가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자 친구 건강하게 제대하게 해 달라고요나는 고개를 돌려 바닥에 침을 뱉었다. 눈으로 덮인 바닥에 조그만 구멍이 하나 생겨났다그런데 안 들어갔네요. 희구는 계속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냥 재미죠 뭐희구가 동전을 꺼내는 사이 그녀들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걸어갔다 희구는 동전들을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꺼냈다 십 원짜리 누런 동전에 입을 맞추곤 돌 주발을 노려보며 거리를 가늠했다. 퐁당퐁당퐁당퐁당돈 잡아먹는 기계네 내가 말했다. 더럽게 안 들어가네 희구가 투덜거렸다퐁당투덜퐁당투덜소리는 계속 들렸고 희구의 동전들은 힘차게 물 속을 향해 뛰어들었으나 번번이 빗나가기 일쑤였다. 퐁당어 들어갔다희구가 소리쳤다너 금 밟았어성공한 희구와 나는 돌다리에 누웠다넣었을 때에 무슨 소원 빌었어……응내가 던지는 데 집중해서 그래다시 던져 동전 없냐아직 있는데돌 바닥에 누워 있으니 등이 시렸다 하늘이 보였다. 눈송이들이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저렇게 많이 떨어트리면 벌린 희구의 입에도 하나쯤 들어갈 것이다. 별 거 아니야 그렇게 많이 던져서 들어간 건……희구가 대답했다. 그렇지 뭐춥다 그만 가자중태야응그런데 저거 말이야 저것들 다 누가 소원 빌면서 던진 게 아닐까너는 빼고나는 빼고다시 던져그게 아니라 우리가 다 주워서 저 돌 주발 안에 넣어주면 혹시나 그 사람들 소원이 다 이뤄지지 않을까않을 걸아니라니까 군대 간 애인도 몸 성히 돌아올 거고 수험생은 합격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담배도 끊고 성만이 형은 장가가고 스님 같은 경우는 득도할 지도 모른다니까성만이 형은 장가 못가 그리고 저거 나중에 은행에서 다 거둬갈 거야희구 말처럼 뜨거운 물을 부었더라도 12월이었고 눈은 내리고 있었다. 내일 쉬는데 지장 있는 토요일이었고 등허리는 시렸고 지금까지 떠드는 통에 뜨거운 물도 다 얼어붙었을 테고 생각만 해도 물 속에 발 담그는 일은 끔찍했다. 저기 감시카메라도 있잖아 돈 훔쳐 가는 줄 알 거 아냐아니라고 하면 되지이 추운데 물 속에 들어가면 동상 걸려중태야뭐오백만 원젠장전세방에서 쫓겨나기에는 너무 치사한 겨울 나는 욕을 하며 양말을 벗는 수밖에 없었다. 희구는 벌써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발을 동동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양말을 신발에 집어넣었다. 드러누워 자다가 얼어죽기 딱 알맞은 정도의 크기의 돌다리로 반분된 연못의 오른편에는 해병대 출신의 희구가 발가락으로 온도를 재고 있었다. 눈발이 굵어지고 있었다. 꺼질 듯 어두워진 나트륨등은 주황색으로 졸고 있었다. 미농지 같은 새벽 유리를 깨듯 희구는 정강이까지 차는 물에 뛰어 들었다. 들 어 와 별로 안 춥네희구가 말 했 다나도 돌로 된 턱에 앉아 발 끝만 담가보았다. 물에 스치기만 해도 발가락이 잘려나갈 것 같았다. 희구가 나를 확 잡아끌었다. 발목부터 심장까지 냉기가 올라왔다 진저리를 치며 눈을 감았다. 무릎 아래로 감각이 없었다. 시리다 못해 불에 데인 듯 뜨겁기까지 했다. 나는 주먹을 꼭 쥐고 몸을 떨었다. 눈을 뜨니 희구가 사라졌다. 연못도 없었고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얼음물 대신 발가락 사이로 모래 알갱이들이 진군하고 있었다. 성처럼 우뚝한 모래 언덕 위로 태양은 사막을 포위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곳에서 낙오된 내 자신이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모래 색깔은 낯이 익었다. 진눈깨비와 안개가 많은 겨울 그 때 보았던 색이었다. 우리 동네 어느 집에 불이 났었고 나는 여덟 살이었다. 어린 소년의 모험적인 불구경은 어른들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했으나 다음 날은 몰래 빠져나올 수 있었다. 흰 소화액이 서리처럼 건물의 잔해 곳곳을 덮고 있었다. 앙상한 기둥에 시커먼 주름살이 생긴 것을 세다가 나는 그 아래 모래를 보았다. 진화하기 위한 초기의 시도였을 물과 함께 얼어있는 모래는 어두컴컴한 재색이었다. 재와 섞인 모래는 추위 때문에 파랗게 질린 것처럼 보였다. 나는 뜨듯한 오줌을 누고 건물에서 나왔었다. 다시 한 번 저 색의 모래와 만났던 때는 얼마 전이었다. 중국에 갈 기회가 생겨 내몽고의 고비사막도 일정에 포함시켰고 열차로 열 두시간을 달려 몽고에 도착했다. 다시 버스로 한정 없이 달리던 중 고비사막은 벼랑처럼 느닷없이 등장했다. 멀리서 본 사막은 섬 같았다. 면적도 예상보다 넓지 않았고 사막을 둘러싼 골짜기는 대륙과 그 경계를 분명히 지었다. 사막은 대륙의 섬처럼 존재했다. 섬이라면 그 밖은 바다였다. 바다에서는 사람들이 살 수 없었다. 그러나 저 섬은 무인도 같았다. 멀리 보이는 모래 언덕에 뭉쳐 있는 사람들은 구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눈을 다시 감았다. 떠 보았다. 여전히 사막 지금 눈 앞의 이 사막은 사막 같은 섬일까 섬 같은 사막일까 모래 바람은 불었고 나는 알지 못하였다. 끌리는 발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모래가 발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천천히 걸어 모래 언덕을 하나 넘었다.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 뒤 내 앞에는 한 꼬마가 서 있었다.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머리는 노랗게 반짝거렸고 넓은 망토는 겉은 푸르고 속은 붉었다. 무릎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꼬마는 길을 잃은 것 같지도 않았고 피곤이나 굶주림이나 목마름에 시달려 녹초가 된 것 같지도 않았으며 겁에 질려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하긴 나도 그랬다. 희구는 잘 지내그가 말했다. 『어린 왕자』를 중학교 때 읽었던가 아니면 읽지 않았던가 내 기억이든 남의 기억이든 시간이 흐르면 기억나지 않는 꿈처럼 느껴진다 양을 달라는 거였지 다음엔 뭐지 장미희구는 잘 지내응 희구는 여전해아직도 잘 울고 그래 하하아니 요즘은 별로다시 모래 바람이 불었다. 모래 알갱이들은 저것 봐 저것 봐 사람이 다 있네 도망가자하는 듯 언덕을 넘어 쓸려가고 있었다. 언덕의 마루가 잔잔하게 떨고 있었다. 희구와 만난 적 있어내가 물었다. 아 예전에모래에 얕게 몸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우리 주변 곳곳에 동전이 떨어져 있었다. 습관처럼 동전을 주웠다 햇빛은 내리 꽂히고 있었고 목이 말랐다. 사람들은 모두 동전을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살기 위해 먼 길을 떠날 때는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 손바닥 안에는 뜨거워진 동전이 빛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내 발자국은 하나도 없었다. 발에 힘을 주어 발자국을 깊게 만들었다. 1분도 되지 않아 나는 끊임없이 지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사막을 떠돌다가 묻힌다 해도 사막은 나를 품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떠난 사막 동전이 반짝거렸다 희구는 언제 이 곳에 다녀갔을까희구는 아무도 여기에 살 수 없을 거라고 그랬어그래 아무도 없네희구가 예전에 준 거야어린 왕자가 동전을 내밀었다. 손에 들린 백 원 짜리 하나는 희구의 얼굴처럼 둥글었다. 다른 동전들은 다 뭐야나 혼자 줍기 힘들어서 기다리고 있었어주워서 어디에 써잃어버리지 않게 모아 두어야해모아 두면사람들은 곧 돌아올 거야 잠시만 있다. 가겠지만 한 번씩은 다녀갈 거야돌아오지 않아 한번 간 사람은그래도 아무렇게나 버려 두는 건 안 돼……어린 왕자는 손으로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가는 손목과 긴 손가락이 보였다. 사막의 속살은 더욱 짙은 재색이었다. 사막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전도 살 수 없다고 희구가 그랬어구덩이 하나가 생겼다 어린 왕자는 계속 말했다. 여기는 아무도 살 수 없지만 혼자 가버렸으니까 한 번은 돌아올 거야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에서 어린 왕자는 동전을 줍기 시작했다. 태양은 점점 커져갔다 나도 허리를 굽혀 동전을 주워 담았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줍기만 했다. 동전은 이제 맨손으로 잡기 어려울 만큼 달아올랐다. 소매를 손목 밖으로 빼내어 동전을 감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동전을 줍고 있었다. 태양은 열 배는 커진 것 같았다. 동전은 용광로의 쇳물처럼 붉게 변해 색을 띄어갔다 열기는 사막 곳곳에 전류처럼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동전을 구덩이에 넣었다. 한 곳에 몰려있는 동전들은 희구의 얼굴 모양처럼 즐거웠다 그는 웃었다. 하하하하하태양은 다시 두 배로 커졌다. 희구를 닮은 동전 무더기는 쩍쩍 금이 갔다 어린 왕자의 웃음소리도 갈라져 들렸다 그는 웃음을 멈추었다. 모든 것이 흩어지려 하고 있었다. 또 다시 두 배로 커진 태양이 비추자 희구의 얼굴 모양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뒤틀렸다 손으로 잡으려 했으나 조각들은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사막도 조각나기 시작했다. 겁이 나서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어린 왕자의 얼굴도 조각나고 있었다. 이 노숙자 새끼들 때문에 잠을 못 잔다니까은행의 경비 두 명이 우리 얼굴에 빛을 비추고 있었다. 갑자기 온 몸이 떨렸고 추위로 이가 맞부딪혔다 갑작스레 닥친 추위와 눈을 찌르는 욕설이 담긴 불빛은 나를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게 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 새끼들아 빨리 안 나와훔쳐 가는 게 아니구요. 그러면 거기서 뭐하고 지랄이야여기 동전들 소원이 사람들이 넣은 거잖아요 그래서 넣어주는 우리 그러는 중이예요. 희구는 더듬거렸다그러니까 빨리 나오란 말이야희구가 연못을 나가자마자 몸집 좋은 경비는 추위와 공포에 언 희구를 밀어 넘어뜨렸다 이윽고 물먹은 빨래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가 들렸다 희구는 몸을 웅크리고 맞으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젊은 새끼들이 응 일을 해서 벌어먹을 생각을 해야지 도둑질을 해무자비하게 내리 꽂히는 발길질 속에 희구의 옷에서 동전들이 튀어 나왔다 동전들은 우리를 피해 도로록 도로록 굴러다녔다거 봐 내가 맞다고 그랬잖아 이 개새끼들다른 경비 하나가 내 멱살을 잡고 끌어 올려 내동댕이쳤다 땅에 머리를 부딪힌 것 같았다. 목덜미에 따뜻한 무언가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검고 먼 하늘이 보였다. 눈은 이미 멎었다. 가물었고 목이 말랐다. 입 속에 눈덩이를 뭉쳐 넣고 싶었다.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희구는 훌쩍대며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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