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기를 읽고
나는 어릴 때부터 기행문을 싫어했다. 그 이유는 기행문이란 어떤 지역을 가서 느낀 점을 글로 적는 것인데, 그 사람의 감상이라는 글로 적어야 할 정도로 특별한 감상을 가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인위적인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기행문을 볼 때, 그냥 "넌 어디 갔다 왔다는 거 자랑하는 거야?"라는 생각밖에 받지 못했다. 이러한 것은 내가 가지 못한 곳에 남이 가서 재미있게 놀다 왔다는 것에 대한 비아냥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 기행문의 표현 방식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일천 봉우리와 일만 골짜기는 경치의 아름다움을 얘기할 때, 과장되게 등장하는 죽은 표현이다. 그 다음 문장은 간략하게 줄이면 "내가 지금까지 본 곳 중에 여기가 최고다"로 요약될 수 있다.
물론 눈으로 본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표현상의 한계가 있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기행문을 읽는 독자가 그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읽기를 기대한 듯한 글쓰기는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한다. 재미가 없어서 얻는 것도 없고, 결국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쌩판 모르는 임춘이라는 사람이 강원도를 갔는데 좋더랜다 정도이다. 누가 너 같은 놈 보라고 썼냐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왔던 것은 다음의 구절이다. "그 경지가 너무 싸늘하여 오래 머무를 수가 없기에 시 한 편을 읊어서 거기에 써놓고 그 곳을 떠났다."
아니, 이 사람이 왜 그렇게 좋은 경치에 낙서를 하고 왔느냐 하는 것이다. 임춘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나, 그가 정말 유명한 문장가라 할지라도, 낙서는 낙서일 뿐이다. 그 사람은 유명한 문장가이니만큼, 그 사람이 쓴 글은 낙서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잘못이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한 문장이 그 지역의 경치와 정말 어울려, 그 문장이 그 지역의 경치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을 때만이, 그 지역에 그 문장을 써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제발 그냥 그 밑의 시를 쓰기위해 하지 않은 낙서를 한 것인양 표현한 것이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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