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들려주는 신사임당의 삶, 그리움과 효심에 대한 이야기
전과 행장 신사임당은 전형적인 한국의 여성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인지 신사임당에 대한 전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들이 쓴 어머니 신사임당의 생애는 그 의미가 특별하리라 생각된다. 고향과 자신의 부모를 그리워하던 신사임당의 마음을 아들이 헤아릴 수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이의 효심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할 수 있다.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으로는 늘 잘해야지 생각함녀서도 가장 쉬운 전화조차 잘 하지 않았었다. 내게는 부모님이나 진배없는 팔순이 넘으신 할머니가 계신다. 어릴 때 거의 할머니의 손에서 컸기 때문에 나의 할머니에 대한 마음은 여느 손녀와는 달리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어제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꿈을 꾸었다. 꿈은 현실과 반대라지만 나는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아침 일찍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너무나 반가워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하고 갈라져 있었다. 오늘도 몸이 안 좋으시구나 생각하며 애써 목소리를 높여 여러 가지를 여쭈어 보았다.
할머니께서는 괜찮다 라고만 말씀하시더니 걱정스레 내 안부를 물으신다. 그리고 여러 가지 당부를 하시는데,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수화기를 놓고는 한참 동안 파동치듯 흔들리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효도라는 것은 큰 게 아닌데,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한 것 같다. 앞으로는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 겠다. 오늘 따라 할머니가 너무나 그립다.
논설 모음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은 모두 듣기 싫은 잔소리로 듣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가 나의 사춘기였던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해라, 돈 아껴 써라, 집에 빨리 들어와라 등등 매일매일 기계처럼 똑같이 반복되는 이야기는 그 당시의 나에게 반항심을 자극하던 것일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애써 외면했다.
철이 든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철없던 때 내가 잔소리라고 여겼던 부모님의 말씀들은 지금의 내가 있게 한 밑거름이 된 것 같다. 왜 좀 그것을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든다. 지금은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것이 얼마나 나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었는지,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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