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lobbylobby입니다.
오늘은 창작과제 성삼문의 죽음에 관하여 묻다 감상문에 대해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작과제 성삼문의 죽음에 관하여 묻다
한주간 내내 감기때문에 정신 못차리고 있다. 가 이제야 글을 올립니다. 월요일 수업 참여 못해서 죄송합니다. 글도 처음에 의도했던 것과 달리 많이 허접하고 엉성해졌네요. 제 부족한 글솜씨와 내공의 깊지 못함으로 인함이니부디 양해하고 읽어주시기를울리는 저북소리 이내 목숨 재촉하는데고개를 돌려보니 서산 해가 저무는구나황천가는 길에는 여관 집도 없다던데오늘 밤엔 어디에서 묵고 가리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어린시절 읽었던 성삼문의 약간 조잡했던 전기문을 통해서였다. 단종을 폐위시키고 정권을 찬탈한 세조에 대항하여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반정을 도모했던 성삼문이 처형장으로 끌려가지 직전에 읊었다. 고 나와 있던 이 시는 유감스럽게도 그 전기문 이외에는 어떤 곳에서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의를 위하여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지사의 성품이 그대로 베어 나오는 이 시가 늘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궁금했다. 성삼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이 대체 무엇이었기에 그토록 쉽게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런 그의 의로움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었을까 그의 행동과 죽음은 어떤 가치를 갖고 있을까 그의 죽음을 놓고 몇가지 의문점을 가져보았다. 첫째 그가 죽음으로써 지키고자 했던 것이 가치 있는 일이었을까 1455년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성삼문은 몇몇 지기들과 함께 단종을 복원시키려고 하다. 가 발각되어 목숨을 잃었다.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던 당시 단종의 나이는 매우 어렸으며 국정을 수행할 능력이 전혀 없는 나이였다. 반면에 세조인 수양대군은 연륜과 힘이 있었고 실제로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경국대전을 편찬하여 법치국가를 이루었고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였으며 둔전제등을 통하여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에 힘쓴 괄목할 만한 치적을 이룬 왕이었다. 둘째 그의 죽음은 성삼문 혼자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의와 충을 지키려고 한 덕에 그가 받은 형벌도 컸을 뿐더러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아야 했다.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는 작형灼刑 단근질으로 처형당하였고 하위지는 참살 당하였으며 유성원은 잡히기 전에 자기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하였다. 또한 사육신의 가족으로 남자인 경우는 모두 살해당하였고 여자의 경우는 남의 노비로 끌려갔으며 사육신 외에도 김문기金文起 ·권자신權自愼 등 70여 명이 모반 혐의로 화를 입었다. 성삼문이 당한 형벌은 두 팔 ·다리 및 머리를 각각 매단 수레牛車를 달리게 하여 신체를 찢는 형벌인 거열형이었고 이어 아버지 승도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극형에 처해졌고 삼빙三聘 ·삼고三顧 ·삼성三省 세 동생과 맹첨孟詹 ·맹년孟年 ·맹종孟終과 갓난아기 등 네 아들도 모두 살해되었다. 성삼문 자신이야 사육신의 대표적인 인물로 역사에 길이 남는 위인이 되었지만 그로 인해 노비로 팔리거나 살해당한 수많은 식솔들의 목숨은 누가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행동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었을까셋째 꼭 죽음만이 방법이었을까 물론 성삼문이 처음부터 죽음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수양대군의 정권찬탈에 반대하고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인 반역을 꾀하였으나 밀고자로 인하여 발각되어 죽음에 이른 것이다. 과연 이런 행동만이 방법이었을까 생육신이 있었다. 그처럼 목숨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평생을 벼슬길에 오르지 아니하고 죄인을 자처하며 살았던 김시습같은 이들이 있었다. 죽음을 택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그의 뜻을 펼칠 수 있지 않았을까어찌보면 이런 질문들을 통하여 그의 행동과 죽음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행동이었다. 고 볼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몇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성삼문과 사육신들의 죽음은 의로운 죽음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세조의 왕위 찬탈은 비열한 행동으로 비난받고 있다. 는 사실이다. 그의 행동의 가치를 묻는 질문들에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할 수 있다. 첫 번째 질문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단종이 나이가 어렸고 세조가 이룬 치적이 많았다. 고 해서 성삼문이 단종을 복위시키려 했던 것이 어리석었다. 고 말할 수는 없다 수양대군이 정권을 빼앗지 않았고 단종이 계속 왕위에 있었다. 면 단종이 성군으로 자라날 수 있지 않았을까 설령 세조가 뛰어난 왕이 되다는 것을 성삼문이 알았다. 고 하여도 성삼문의 행동은 옳은 것이었다. 단종은 왕이었고 수양대군은 신하였다. 또한 단종은 수양대군의 친조카였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낸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이었고 옳지 않은 행동을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은 군자의 삶이 아니었다. 두 번 째 그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식솔들의 죽음에 굳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면 성삼문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연좌제라고 하는 조선시대 당시의 법률에 물어야 옳을 것이다. 반역을 꾀하면 삼족을 멸한다. 는 연좌제는 단지 죄인과 친척관계에 있다. 는 이유만으로 수없이 많은 죄없는 목숨들을 앗아갔다 물론 연좌제를 통해서 자신의 식솔들까지도 모두 죽어야한다. 는 사실을 성삼문이 알고있었기는 하다. 그러나 옳지 않은 무리에 의해 나라가 능욕 당하는 상황에서 자신과 가족들의 안위만을 위하여 모른 체 하고 있다. 면 더 큰 가족인 백성들을 위험하게 하는 일이다. 나라가 바로 세워지지 않고서는 그 백성 또한 바로 세워질 수 없는 것이다. 세 번 째 평생을 벼슬에 오르지 않고 죄인을 자처하며 살았던 생육신들의 삶도 존경할 만한 삶이었지만 과연 그들의 삶이 무엇을 바꾸어 놓았는가 스스로는 죄인이라고 하여 숨어살았다. 고 하나 그로 인하여 나라가 변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성삼문은 적극적으로 옳지 않은 것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였으며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 죽음에 이른 것이었다. 이런 성삼문의 적극적인 행동을 그 결과가 무위로 돌아갔다고 하여서 가치 없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삼문이 죽은 지 몇 백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 나라는 바로 세워져 있지 않다. 꽃다운 여중생들이 외국 군인들이 운전하는 장갑차에 깔려 죽었어도 정부는 당당하게 이에 대하여 항의하거나 범인들을 재판권을 요구하지도 못한다. 친미적이고 보수적인 대형 언론들은 이 땅의 아픔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소위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은 미국에 가서 그 나라 대통령을 만나고 온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그나마도 국정원 도청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흑색비방으로 온통 선거 판을 흐리고 있다. 그런데 이 땅에 사육신이 없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여 제 목숨까지도 내어놓으면서 의를 세우려는 성삼문 같은 젊은이들이 이 땅에는 너무나 적다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여중생들 두어명 죽은 문제로 우호적인 한미관계를 깨트려 한반도를 위험에 빠트릴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통령선거에 나 하나 투표하지 않는다고 이 나라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 할 수 있다. 여중생사건이니 대선이니 신경 쓰기엔 취업문제나 학업 가족들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어차피 정치판은 썩었다. 고 그런 썩은 정치판에 가까이 하기 보다는 멀리하여 홀로 깨끗하겠다. 는 생육신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대선 후보들을 보니 모두 그 밥에 그 나물이라 아무도 찍기 싫어서 12월 19일에는 투표하지 않고 스키나 타러 가야겠다. 고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이들에게 묻는다 이 땅의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왔는가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우고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트리고 조선을 세우고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박정희가 전두환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왔다고 역사란 늘 그 모양이라고 생각하는가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지는 고려를 붙잡고 있었던 정몽주가 있었고 단종을 끝까지 지키려던 사육신이 있었고 군부독재정권에 죽음으로 항거하던 수많은 민주열사들이 있었다. 역사는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다 그들의 죽음이 조선의 건국을 막지는 못했어도 세조가 아무렇지 않게 계속 왕권을 지키며 수많은 치적을 이뤄냈어도 박정희가 여전히 존경할만한 대통령상으로 기억되고 있어도 불의에 참지 않았고 이에 항거했던 의로운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는 옳은 것이 무엇이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 할 수 있는 것이다. 젊은이여 의로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면 행동하자 광화문에서 촛불 들고 여중생사망을 추모하며 미군을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하든 대선에 약간의 관심을 갖고 어느 후보가 올바른가를 판단하여 12월 19일에 투표를 하든 그 행동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행동하자 설령 그 행동이 허무하게 실패한다. 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 안에 의로움에 대한 인식은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을 믿고 행동하자2002년 11월 25일코메디 같은 그러나 감격적인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진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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